Note 3
December 15, 2021•314 words
학교에서 쓰이지 않는 공간을 보면 그곳에서 쌓아올렸을 추억을 생각하게 된다. 운동부들이 체육관과 운동장에서 추억을 쌓아가듯이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은 컴퓨터실에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미술실에서 그랬을 것이다. 이런 컴퓨터실과 미술실을 단순히 수업을 하는 공간이 아니라, 친구와 선생님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기억의 배경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추억속에 남아있는 공간이라고 자주 생각하곤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나도 추억에 잠기게 된다.
나는 신관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추억속 한 장면으로 생각해 왔지만, 오케스트라부에서 활동하면서 나 또한 신관을 배경으로 삼아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 그것도 내 마음 깊이 남아 오래도록 위안이 되어줄 추억을 말이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어떻게든 추억에 남지 않겠나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2학년을 집에 틀어박혀 보냈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쩐지 트롬본이 멋져보이기도 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트롬본 같은 걸 만져볼까?
하지만 트롬본에 대한 흥미는 얼마 안 가 떨어졌다.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트롬본을 불 땐 입술을 모으고 세게 숨을 내쉬어야 하는데, 아무리 불어도 김빠지는 소리만 나니 재미도 없고 나만 못하는 것 같아 부담도 느꼈다.
사실 오케스트라부에서의 추억은 트롬본의 추억이 아닌 사람들과의 추억이다. 오케스트라 날 저녁엔 음악 선생님, 트롬본 선생님과 주고 받은 대화를 곱씹으며 웃음짓곤 했다.
음악 선생님은 언제나 친절하게 말을 건네주셨고 학생들을 격의없이 대해주셨다. 트롬본 선생님께서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이렇게 본받을만한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과 대화하며 불안이나 분노가 아니라 안정이라는 감정과 반갑게 재회했다.
3학년 내내 내는 반에서 친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오가는 대화 속에서 내 역할은 언제나 청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적은 인원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수업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 길의 발걸음은 언제나 가벼웠다. 난 언제나 친구를 일부러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존중받고 대화의 주체가 되는 느낌에 목말라있었던 것 같다.
매일 수많은 교실을 지나고 수십채의 건물을 보지만 그저 다를 것 없는 건물일 뿐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그 건물이 안을 바라보면 그곳에는 추억이 있고 작은 행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나는 중학교를 다니며 추억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